오늘은 내가 수술받은 지 딱 1달째 되는 날.
암진단받기 전부터 지금까지 일상을 여러 번에 나눠서 쓰려고 한다.
자세한 기록이라서 글 많을 수 있음..ㅋㅋㅋㅋㅋ
암 진단 받기 전
일단... 내 인생에 암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고...
31세에 암이 걸릴 줄은 더더욱 상상을 못 했다
평상시에 갑상선 질환도 없었고 백신 맞고 잠깐 갑상선질환이 오긴 했지만 약 안 먹고 자연 치유가 되어서
마지막 초음파 검사하고 안 오는 걸로 하자고 선생님이 그러셨다. 그래서 마지막 초음파를 했는데 그게 암을 발견한 것 일 줄이야... 담당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를 보시고 괜찮은 것 같다고 하셨는데 초음파 해주신 선생님은 의심 가는 모양이 있다고 세침검사를 해보라고 하셨다...(워낙 너무 쪼그매서 초음파로는 식별이 잘 안 된다고 함) 굳이 안 해도 되는데 그래도 해보자고 이렇게까지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암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ㅠㅠ...
세침검사 간단 후기
세침 검사는 조직 검사인데 바늘로 조직을 채취해서 검사하는 것이다.
세침 검사... 뭐 따끔하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일단 생각보다 너무나도 긴 주사 바늘이었고 (이거보자 개당황+what the....+뭐야.....) 그게 목에 들어가는데 계속 쑤신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인데.... 그냥 아프다는 감각이 아닌 굉장히 불쾌하게 아프다고 해야 할까...
세침검사를 하는 동안 아주 잠깐의 시간이지만 체감상 5분 동안 쑤시는 거 같고 '왜 이렇게 오래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지금 생각해 보면 조직 검사는 검사 말고 조직 수술로 바꿔야 함....
검사하면 밴드 붙여주시고 지혈하라고 10분 정도 누르고 가라고 한다. 검사하고 나서도 목 안에 느낌이 이상했고 하루동안은 목 안이 불편했다...
갑상선암 판정받았던 날
아직까지 암 판정받은 날 순간순간이 다 기억난다...
결과는 세침 검사 일주일 후에 들으러 왔다. 암은 생각도 못했지만 그래도 긴장되었다...
내 차례가 되어서 들어갔다. 너무 긴장돼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평상시와 같은 밝은 표정으로 "다행이네요"라고 시작했다. 그래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찰나에 갑자기
"암이에요"라고 가볍게 말씀하시는 선생님 말에 당황해서 "............... 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속으로 '왜 다행인거지...'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읽으셨는지 선생님께서 아까와 똑같이 밝은 톤으로 "그때 제가 봤을 때는 모양이 괜찮았는데 초음파 해주시는 선생님은 세침검사하고 했는데 검사하길 잘했네요. 99% 암 조직으로 나왔어요. 극초기에 발견됐는데 이건 조직검사로만 알 수 있는 거여서 세침검사하길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드라마에 나오는 암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의사들 연기는 다 개구라였음... 하하...)
그 뒤로 선생님이 뭐라 말하셨는데 솔직히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냥 내가 암이라고? 왜? 아직 나이도 어린데 술담배도 안 하고 운동 매일하고 건강하게 살았는데 왜지? 수술하면 흉터는 어떻게 하지? 온갖 생각들이 그 짧은 찰나에 툭툭 튀어나왔다. 선생님이 계속 말하는데 심장이 빨리 뛰면서 호흡이 빨라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암에 대해 나는 솔직히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극초기이면 약물치료 같은 거 없냐고 선생님께 물어봤다.
암은 아무리 작고 초기여도 떼어내는 수술밖에 답이 없다고 하셨다.
암..... 정말 무서운 거였구나...
제가 갑상선암에 왜 걸린 거죠?라고 선생님께 물어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은 질문을 했었네...ㅋㅋ
아무튼 선생님은 모두에게 암은 올 수 있다고 하셨고 갑상선은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생길 수 있다고 하셨다.
스트레스......
3개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긴 했었다 (장기연애 전남친의 바람으로 이별 이슈ㅎ쓰레기 같은 베이비ㅎㅎ) 다행인 건 나이도 젊고 초기니까 로봇수술도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로봇수술을 하는 외과선생님 연결해 주셨다.
(초음파 선생님 누구인지 모르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내 은인...)
일단 외과선생님 일정 잡고 뭐 하라고 해서 병원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데 감정이 부들부들거리면서 진정이 될라 말랑했다.
일정 다 잡았고 이제 집 가야 되는데 감정이 주체가 안돼서 병원로비에 잠깐 앉았다.
앉자마자 눈물이 펑펑 났다. 엄마아빠한테 어떻게 얘기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내가 암인 것도 충격이고 무섭고 당황스럽고 모든 감정이 다 쏟아져 나왔다. 마스크 쓰고 눈물만 펑펑 흘러서 마스크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엄마한테는 차마 전화로 말을 못 하겠어서 카톡으로 '엄마 나 갑상선암이래. 놀라지 마셔~오히려 지금 생기자마자 발견된 게 다행이라네? 로봇수술도 된다 해서 흉터 걱정도 없대' 이런 식으로 놀라지 않게 하려고 보냈던 것 같다. 근데 정작 나는 놀래서 엉엉 울면서 카톡 쓰고 있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엄마한테 전화 왔고 오히려 엄마가 나보다 더 용감하게 다행이라고 힘차게 말해줘서 울지 않았다. 근데 엄마가 '놀랐지? 괜찮아~'이 한마디에 눈물 다시 폭발했다...ㅋㅋㅋㅋ 그리고 집으로 운전해서 가는데 또 펑펑 울면서 운전했다...ㅋㅋㅋ 누가 보면 시한부인 줄 알겠다...ㅋㅋㅋㅋ 그래도 그날은 너무 놀라서 울어도 되는 날이었으니까.
근데 그날 판정받은 날 으앙 울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울었다. T여서 그런가...( 퇴원하는 날 선생님한테 혹시 T냐고 소리도 들음...ㅋㅋㅋ) 아무튼 이 날은 이상하게 하늘과 구름이 미친 날이었다. 그래서 검사 결과 들으러 가기 전에 '병원 갔다가 깐이랑 산책 가야지 룰루'라고 생각했었다..ㅋㅋㅋ 약간 내 버전의 운수 좋은 날 소설 같기도 하는 그런 날씨....
어쩌면 무지개다리 건넌 주몽이가 누나를 위로해주려고 왔는지도 (우리 가족은 주몽이 구름이라고 하는 구름이 있는데 주몽이가 무지개 다리 건넌 날의 하늘과 구름이 말도 안 되게 예뻤다. 그래서 그날과 같은 하늘과 구름이 오는 날이면 주몽이가 보러 왔다고 우리 가쪽끼리 말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짓말같이 눈물이 뚝 멈쳤고 거울 앞에 서서 암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베이비야 넌 나한테 잘못 왔어 0.7mm 주제에 감히 날...?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긴장해라?"
그리고 깐이랑 같이 빵 사 먹으러 감 눈누난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진 찍으려고 하는데 지도 달라고 손 올리는 거 귀엽네 풉
맛있게 빵 먹고 이 날은 가만히 집에 있으면 또 울 것 같아서 한강으로 산책 갔다.
산책 가길 너무 잘했다
뭔가 날 위로해 주는 느낌이었고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는 느낌이 마구마구 들었다.
깐이도 좋아서 펄쩍펄쩍 뛰고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성큼성큼 걸었다
진짜 이 날 하루는 온 감정이 다 들었다
평상시에 차분하고 극 T지만... 암이라는 글자에 뒤집히는 날 보고 참 신기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와 이제 내 인생에 올 만한 안 좋은 일들은 너가 끝이구나
정말 대단한 마침표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다시 차분해졌다...ㅋㅋㅋㅋㅋ
암 판정받은 날은 하나하나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입원 전 날까지의 일상
수술날짜 받기 전 수술해 주실 이용상 교수님을 만났다. 정말 개쿨~~~~~~냄새가 진동히셔서 웃겼다...ㅋㅋㅋ
겨드랑이를 통한 수술이고 뗴면 괜찮아요 이게 끝.ㅋㅋㅋㅋㅋㅋ 나보다 심각한 환자들 많이 보셔서 나 정도는 껌이시겠군 이런 생각이 들었다...ㅋㅋㅋㅋ
오히려 수술코디네이터 분이랑 이야기를 더 많이 한 느낌이다.ㅋㅋㅋㅋㅋㅋ
수술 전 검사를 이 날 한꺼번에 했다. 피검사, ct, 초음파를 다 하니 아침 8시에 병원 왔는데 오후 4시 넘어서 집 감......
수술날짜를 바로 잡지는 못했다. 병원의 무기한 파업 때문에... 그래서 파업이 끝나면 연락 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안되어서 다행히 수술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나는 로봇수술이라서 생각보다 빨리 수술할 수 있었다. (절개수술은 대기가 어마무시하다고 한다....)
8월 8일 수술... 8월 7일 입원을 시작으로 10일 퇴원.
수술 전까지는 평상시처럼 지냈던 것 같다.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고 (대신 새벽에 자는 버릇은 못 고침)
그리고 삿포로 여행도 5박 6일 정도 길게 다녀오고 친한 친구들 만나면서 응원도 받았다.
암 판정받기 전과 다른 거라면 조금 더 내 행복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여행하기, 깐이랑 산책 가기, 깐이랑 드라이브 가기, 오리백숙 먹기, 책 읽기, 영화 보기, 맛있는 빵 사 먹기 등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날들을 보냈다.
물론 로봇수술 후기를 찾아보면서 겁먹어서 잠 못 이루는 밤도 몇몇 있었지만 어쩌겠어해야 되는걸..
그럴 때마다 다시 거울 앞에 서서 암을 가리키면서 '야 이 베이비야 너는 아주' 이러면서 욕을 해주었다..ㅋㅋㅋㅋㅋㅋ
(그러면 기분이 쫌 풀림)
그리고 입원하는 날
수많은 후기들을 보고 준비해 간 내 입원 준비물들 챙기고 마지막으로 카레우동이 너무 먹고 싶어서 아비꼬에서 카레우동 시켜 먹었다. 생각보다 맛없었어서 살짝 실망....
캐리어에 가득 준비물들을 실어서 씩씩하게 병원에 도착했다.
수많은 후기들에서 보고 챙겨 오라는 건 다 챙겼는데
솔직히 안 쓴 거 진짜 많았다... 진짜 이건 있어야 되라고 했던 준비물은
탁상 선풍기, 휴지, 구부러지는 빨대와 텀블러, 내 개인 베개, 수건, 모자, 충전기, 에어팟, 토너패드, 칫솔치약, 개인 세면도구, 종이컵, 슬리퍼, 작은 머리고무줄 이 정도만 있어도 정말 충분했다. 목베개를 챙기라 해서 챙겼는데 정말 한 번도 안 썼다... 일단 수술한 뒤로 목이 잘 움직였고 목베개보다는 내 개인베개를 병원베개와 같이 두 개 해서 자는 게 훨씬 편했다.
각 물품별로 필요한 이유를 말하자면!
갑상선암 수술 필수 준비물
- 탁상 선풍기: 다른 사람과 같이 써야 하는 병실이라서 더울 수도 있다. 나는 더워서 선풍기를 사용했고 머리 말릴 때도 아주 유용했음...(샤워실은 있지만 드라이기는 사용할 공간이 없다....그래서 선풍기로 머리 말림)
- 휴지: 입원실에 개인 휴지 없어서 휴대용 휴지 챙기면 편함
- 구부러지는 빨대와 텀블러: 수술하고 목은 자유롭지만 그래도 조금 불편하기에 그냥 빨대 말고 구부러지는 빨대 진짜 유용하다. 텀블러는 차가운 물 담아두기 좋아서 필요하다. 수술하고 나면 목이 붓기 때문에 찬물을 많이 마셔야 된다.
- 내 개인 베개: 목베개보다 훨씬 편함. 앉아 있을 때 허리 뒤에 받치기에도 좋고 잘 때도 비스듬하게 자기 편하다.
- 수건, 개인 세면도구: 솔직히 난 수술하고도 씻을 줄 알았는데 못 씻음... 링거를 계속 맞기도 하고 겨드랑이 때문에 씻지 못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이유는 입원 당일만이 내가 자유롭게 씻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니 머리 감고 꼭 샤워하기를...
- 모자: 수술하고 떡진 머리로 편의점과 로비를 갈 수 없으니 챙길 것!
- 충전기와 에어팟: 지루한 병원에서 시간 보낼 수는 필수템
- 토너패드: 이거 진짜 유용하다... 수술하고 세수를 못해서 토너패드로만 닦는데도 세수하는 느낌이라 매일 토너패드로 아침저녁 세수했다! 강추
- 칫솔치약과 종이컵: 샤워와 머리는 못 감아도 양치질을 할 수 있으니까 챙기기! 종이컵은 양치하고 물가글할 때 진짜 유용하다. 고개 숙이는 게 불편하고 링거 때문에 양손 쓰기 불편해서 종이컵 필수템
- 슬리퍼: 신고 벗기 편해서 아예 처음부터 신고 갔다.
- 작은 머리고무줄: 수술하러 갈 때 머리를 양갈래로 따는데 병원에서 주는 건 노란 고무줄을 준다. 근데 나중에 뺄 때 머리카락 빠지면서 아프게 빠질 것 같아서 작은 고무줄을 가져가는 걸 추천한다. 대신 색깔 있는 건 안된다고 한다. 나는 투명색 고무줄 가져갔는데 검정, 투명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아!! 그리고 꼭 겨드랑이 털 제모하고 올 것... 왜 모든 후기에는 안 알려줬는지 모르겠지만...
수술하기 전에 털이 없어야 된다 하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직.접. 해주심.... 겨드랑이 번쩍 들고 면도기 같은 걸로 모르는 사람이 털 밀어주는데.... 하하.. 다행히 나는 겨드랑이에 털이 별로 없기도 하고 며칠 전에 제모해서 별로 없었지만 꼭 제모하고 갈 것....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면 항생제 테스트 하는데 아픔...
그리고 쓰라고 하는 서류가 얼마나 많은지 시간이 슝 간다...
저녁에는 친구들이 응원해 주러 와서 설렁탕 먹었다 ㅋㅋㅋ 진짜 너무너무 고마웠다,,,ㅠㅠㅠㅠㅠ
지하 푸드코트에서 먹으려고 하는데 원래 환자복 입은 사람들은 출입금지라고 한다.
나중에 근처 식당에서 먹고 들어왔는데 환자복 입고 밖에서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뒤늦은 말.... 밖에 나가는데 아무도 제지를 안 해주길래 몰랐다.... 제가 병원 입원이 난생처음이라 몰랐어요 슨생님........
친구가 준 책과 편지와 젤리~~~ 이 젤리를 마지막으로 금식!
그리고 샤워하고 선풍기로 머리 말리고 넷플릭스 워킹데드 보기...ㅋㅋㅋㅋㅋ
보호자는 1명만 가능하다. 아직 코로나 때문에 입원실에는 보호자 1명만 들어올 수 있고 보호자 출입증이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엄마가 일 끝내고 오느라 밤 10시에 와서 엄마 마중하러 가기~~
낮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던 병원 로비가 텅~~ 비었다.
텅 빈 로비를 보는데 마음은 자꾸 잡생각과 긴장으로 가득 차간다...
'내일 수술.... 잘할 수 있다....'를 외치며 입원 당일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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